파주읍(舊 주내면) 연풍리 일대, 속칭 대추벌에 형성된 성매매집결지다. 휴전협정 체결 3년여 만에 서부전선 참전 미군이 파주 곳곳에 배치되면서, 작전부대 2개와 미군 휴양소 RC#1이 들어선 농촌 마을 용주골은 "한국의 텍사스촌"이라 불리는 환락가로 변모했다.
문산읍에서 남쪽으로 약 6km 지점의 집성촌 마을에서 시작해 미군 기지촌으로 변모했고, 미군 철수 이후 쇠퇴한 지역경제 속에 성매매업소가 남아 지금까지 폐쇄 정책의 대상이 되고 있다.
위치와 여건
용주골은 문산에서 남쪽으로 약 6km 후방에 위치한 성가·조가·박가·윤가의 집성촌 마을이다.
1953년 7월 휴전협정이 체결되자 미군은 용주골 지역에 캠프 보먼트(Camp Beaumont)와 캠프 버드(Camp Bird) 기간부대를 배치하고, 서부전선의 휴가 병사를 위해 제1휴양소(Recreation Center #1, RC#1)를 설치했다. 통상 RC#1으로 불리던 이 휴양소는 용주골 삼거리에서 법원 방향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았다.
미군은 이 밖에도 문산 선유리에 제4휴양소(RC#4), 민통선 지역 군내면·진동면에 제2·3휴양소를 설치해 전체 4개소를 운영했다.
발생과 배경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미국은 육·해·공군을 한국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할 권리를 갖게 됐다. 주한미군은 전쟁 중 30만 명이 넘는 규모였다가 휴전 후 대부분 철수해 1960년대 말까지 6만여 명이 주둔했다. 1971년 지상군 1개 사단, 1980년대 초 1개 여단이 추가로 철수하면서 지상군 여단·공군 등 3만 7천여 명이 한국에 남았다.
용주골에는 1956년 RC#1이 설치됐고, 캠프 보먼트·캠프 버드에 더해 파주리의 캠프 커스터(Camp Custer), 대추벌 부근의 2개 부대까지 전체 5개 부대가 있었다.
훈련을 마치고 휴가·외출을 나온 미군으로 마을이 가득 차면서 클럽·다방·목욕탕·식당이 신장개업했고, 좁은 마을에 미군 물자와 달러가 넘쳐 났다. 전쟁으로 생산기반이 무너져 돈벌이가 부족하던 시기라, 피난민과 무직자가 전국에서 용주골로 몰려들었다.
외출·외박 나온 미군은 클럽에서 술과 당구를 즐기며 함께할 여자와 숙식할 방을 찾았고, 이 수요에 따라 위안부가 생겨나고 미군 물자로 지은 건축물이 늘면서 건축업자·건자재상·식재료점·가구점·포주가 함께 늘었다.
용주골이 서비스업 중심으로 시가지가 넓어지면서 "한국의 텍사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무렵 문산 선유리는 "한국의 뉴욕"으로 불렸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환락가가 되자 내국인의 발길도 끊이지 않아 더 번성했다.
환락가로 전락하자 미군 당국은 한국 정부에 클럽 내국인 출입금지와 클럽 종사자·위안부 성병검사를 요구했다. 미군 당국은 파주군 전체 위안부를 1만 명으로 추산했고, 한국 주둔 미군의 성병 발병률이 일본 주둔 미군보다 5배 이상 높다고 봤다.[1]
한국 정부는 미군 성병 예방을 위해 기지촌 지역 클럽·식당 종사자와 사창가 거주 위안부에게 건강검진 형식으로 주 1회 성병검사를 받도록 했다. 검사는 관내 5개 병원(파주리·신산리·장파리·늘노리·봉일천) 중심으로 이뤄졌고, 미군 휴양소가 있는 선유리와 용주골은 공무원이 직접 관리하는 별도 성병관리소에서 검사받도록 했다.
용주골 성병관리소는 현재 파주읍 소방서 건물 자리에 있었고 공무원 1명·의사 1명·간호사 1명이 근무했다. 검사에서 이른바 '낙검'이 되면 현재 금촌 로터리 부근 언덕 위 '하얀집'이라는 성병관리소에서 감금 치료를 받았다.
기지촌의 생활
1978년 당시 파주에는 43개 미군기지 중 8개가 남아 있었다. 1970년 기준 파주 지역 전체 220개리 중 35개리가 미군부대 주둔 기지촌이었다. 파주군 인구 16만 4천 명 중 약 4만 8천 명이 기지촌에 거주해 전체 인구의 29.2%를 차지했다. 기지촌 35개리 중 용주골(연풍1리) 인구가 약 4,700명으로 가장 많았다.
1962~1970년 용주골 인구는 연평균 5~10% 증가했고, 1977년 기준 20~24세 여성 인구가 급증했다. 등록 위안부 수는 1963년 295명에서 1969년 800여 명으로 늘었고, 미등록자를 포함하면 1천여 명으로 추정된다. 내국인 출입이 금지되는 클럽은 1960년 파주 전체 74개소 중 20개소가 용주골에 있었다.
용주골 경제는 미군 상대 서비스업이 중심이었다. 업종 구성은 식료·잡화점(17%), 양품점(8%), 양복점(8%), 클럽(7%), 선술집(6%) 순이었다. 미군이 복무를 마치고 귀국하거나 휴가 때 이용하는 보석상·화방·기념품점·사진관이 성행했고, 미군과의 국제결혼·비자발급을 대행하는 업소도 영업했다.
미군부대에서 유출된 물자 매매는 불법이지만 수익이 많았다. 이른바 '양키 물건 장사꾼'은 위안부가 미군을 통해 PX에서 구입한 양주·담배를 인수받아 전문 업소나 서울 남대문시장으로 유통했다.
미군부대 식당에서 일하던 하우스보이를 통해 미군이 먹다 남은 햄·치킨 등이 부대 주변 식당으로 유출돼 부대찌개가 만들어졌다는 설명도 전해진다. 문산 일부 업소는 1990년대 초까지 미군 육류를 이용했다고 한다. 이 부대찌개 유래는 기지촌 생활 문서가 함께 전하는 다른 유래(종업원→관리인→음식점 유통설)와 병존하며, 두 설명 모두 확인 가능한 출처이므로 어느 한쪽을 정정하지 않는다.
목욕탕은 위안부 1천여 명이 떠받친 용주골 경제의 주요 수익원이었다. 전후 급배수 시설이 불량했지만 위안부들은 포주의 감시를 피하고 서로 안부·정보를 나눌 수 있는 목욕탕을 매일 이용해야 했다. 파주읍 지역 전체 목욕탕 4개 중 3개가 용주골에 밀집했다.
일반인은 주로 오전에, 위안부는 밤늦게까지 영업하느라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목욕탕을 이용했다. 위안부가 주 소비자였음에도 남탕과 면적은 비슷하면서 사물함은 여탕이 두 배 이상 많았는데, 이는 공간을 좁게 만들어 여성의 동시 입장을 제한하고 순환을 빠르게 하려는 업주의 의도로 풀이된다.
용주골의 캠프타운 경제는 지역 근대화에도 일조해, 다른 지역보다 가로등과 직통전화가 먼저 들어섰다. '닭튀김'이나 '플레이보이' 잡지 같은 미국 문화도 이곳에서 먼저 접할 수 있었다.
캠프타운 경제는 미군 정책에 종속돼 있었다. 미군 당국이 외출금지(off-limit) 명령을 내리면 상인·지역유지가 미군 고위직에 해제를 건의하거나, 위안부를 앞세워 캠프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2]
경제적 쇠퇴
1971년 미군기지가 이전·축소되면서 용주골은 쇠퇴기를 맞았다. 미군을 상대로 영업하던 상인·포주는 대구·왜관·칠곡 등으로 함께 이동했다. 미군이 떠나 경기가 나빠지자 교육환경도 악화돼 초등학생 절반이 서울 연신내 부근으로 전학 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미군부대 이전으로 경기가 위축됐지만, 문산·판문점 등에 잔류한 부대에서 미군이 용주골을 찾아오거나 위안부가 미군 훈련장으로 '출장' 영업을 하면서 경기는 어느 정도 유지됐다. 미군이 점점 줄자 1990년대부터는 완전한 쇠퇴 국면에 들어섰다.
용주골 외곽인 대추벌(연풍2리)은 1990년대 후반 서울 천호동·신길동·미아리 일대 윤락가가 폐쇄되면서 한국인을 상대로 한 집창촌으로 탈바꿈했다. 이 상황은 2004년 성매매특별법 시행 전까지 이어졌다.
1996년과 1998년 대규모 수해로 상당수 건물이 리모델링·신축됐지만, 2016년 당시 용주골 대로변과 연풍시장 점포 217개소 중 약 40%인 80개소가 공실이었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54%를 넘었고, 기초생활수급자 비율도 약 15%로 전국 평균(3%)보다 크게 높았는데, 이는 과거 위안부였던 여성들이 경제적 기반을 상실한 결과로 풀이된다.[3]
2019년부터는 행정안전부 '특수상황지역 개선 사업 지원(2017~2021)'을 받는 '창조문화밸리 사업'이 진행 중이다. 1960~70년대 거리를 복원해 관광 자원을 발굴하는 것이 목표다. 상세 내용은 용주골 창조문화밸리 프로젝트 문서 참고.
성매매 집결지 폐쇄 추진
2023년 파주시는 성매매업소 60여 개, 종사자 약 150여 명으로 추정되는 규모의 폐쇄를 추진했다. 파주시는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하고 같은 해 1월 26일 파주경찰서·소방서와 협약을 체결했다. 파주경찰서와 소방서는 각각 대상지 일대를 '범죄예방구역'과 '화재안전 중점관리대상지역'으로 지정해 단속·특별점검을 실시할 계획이었다. 이는 김경일 시장의 신년 1호 결재로 공식화된 정책이었다.
2026년 손배찬 시장 취임 이후에는 명칭 변경('대추벌')과 구조적 해체 추진, 그 과정에서 벌어진 주민·시민단체 간 충돌을 거쳐, 2026년 8월 대추벌 주민·업주·종사자들이 자진폐쇄를 공식 선언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자세한 경과는 용주골 성매매집결지 폐쇄 추진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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