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문신인 황보인(黃甫仁)이 창만리 집 근처에 지은 정자로 당시 광탄천의 시와 경치를 즐겼다고 한다. 은행정(銀杏亭)은 광탄 어귀 만장산 북맥의 끝머리에 있다고 전해지며 정자 근처에 은행나무가 있어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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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문신인 황보인(黃甫仁,?~1453)이 창만리 집 근처에 지은 정자로 당시 광탄천의 시와 경치를 즐겼다고 한다. 은행정(銀杏亭)은 광탄 어귀 만장산 북맥의 끝머리에 있다고 전해지며 정자 근처에 은행나무가 있어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
==문헌 기록==
==문헌 기록==
===은행정===
===은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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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인인 홍유손洪裕孫(소총,1431-1529)이 은행정에 대하여 시를 남겼다.<ref>'파주예찬-옛길에서 한시를 만나다',2012.12.26.파주시 발간</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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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인 홍유손洪裕孫(소총,1431-1529)이 은행정이라는 시를 남겼다.<ref>'파주예찬-옛길에서 한시를 만나다',2012.12.26.파주시 발간</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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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기대앉아 이슬 젖은 수건을 보노라
나무에 기대앉아 이슬 젖은 수건을 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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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향정===
===은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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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문화 21호에는 은향정(銀香亨)이라고 표기되었자먼 은행정(銀杏亭)을 잘못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은행이라는 이름은 열매가 살구 비슷하게 생겼다하여 살구 행(杏)자와 중과피가 희다 하여 은빛의 은(銀)자를 합하여 은행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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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발행된 파주문화 21호 중 '임진강의 누정문화'에서 은향정(銀香亨)이라고 소개했지만 은행정(銀杏亭)을 잘못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은행이라는 이름은 열매가 살구 비슷하게 생겼다하여 살구 행(杏)자와 중과피가 희다 하여 은빛의 은(銀)자를 합하여 은행이라는 이름이 생겼다.